당근 · 2025-10-22
안녕하십니까, 동지들, 당근입니다. 오늘도 투쟁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투쟁!
슬슬 날씨가 추워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납니다. 옷차림도 그때랑 비슷해졌죠? 여러분들은 혹시 지혜복 선생님을 언제 처음 봤나요? 기억하시나요? 저는 선생님과 동지들이 이곳에서 연행되기 전날 처음 봤습니다. 두 번째는 동덕여대 시위였습니다. 다시 만난 혜복 동지는 제게 손이 차다며 자기 손에 쥐고 있던 핫팩을 제게 쥐어주셨어요. 그 핫팩을 받은 이후로 저는 교육청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이곳에 오게 되어 외치던 구호 중 가장 싫어하는 구호가 하나가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지혜복이다'라는 구호인데요. 왜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저는 지혜복이 아니니까요. 저는 지혜복이 아니기 때문에 학생들이 처음 성폭력 상황을 알렸을 때 그것을 듣던 지혜복의 마음을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지혜복이 아니기에 부당 발령에 항의하고 거부했던 지혜복의 결심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해임 당하고 제대로 펼치지도 못하던 텐트 하나만 덜렁 갖고 교육청 앞에 나와야 했을 지혜복의 감정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본인의 투쟁을 두고 광화문에 모여야 했을 지혜복을, 선생님을 이제서야 알았다고 찾아온 동지들의 손을 잡았던 지혜복을, 이 자리에서 22명과 함께 연행이 되었던 지혜복을, 이곳에 농성장 천막을 펴고 삭발을 했던 지혜복을, 지켜왔던 농성장을 강제로 뜯어내겠다며 붙이려던 종잇장을 막던 지혜복을. 저는, 우리는 단 한 순간이라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종종 삭발을 하기 전 그리고 최근 행진 후에 발언을 하기 전 선생님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선생님은 생각이 많은 얼굴로 조용히 이곳을 배회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다 앞에 나와 머리카락을 자르셨고 마이크를 잡고 발언을 하셨습니다. 그 얼굴을 보았을 때 저는 선생님께서 홀로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짊어지고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근무하던 학교, 교육청, 소속 단체 그 어느 한곳 선생님께 관심을 갖고 지켜주려는 곳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선생님에 대해 왜곡하고 비난하며 괴롭혀왔습니다. 저는 이러한 일들을 겪은 선생님에 대해 감히 잘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저 듣고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같이 분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잘못된 것들을 바로 잡아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과거 선생님의 제자를 만나기도 했고 선생님과 함께 전교조 서울지부 회의에 참석하였고 정근식 교육감이 간담회에 간다고 하여 따라갔습니다.
가는 곳마다 크게 분노하였습니다. 선생님을 혼자 둘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뿐만이 아니겠죠. 언제든 모여들어 함께 분노하고 뛰고 소리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네, 그제부터 오늘까지 농성장이 걱정된다며 찾아와주신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언젠가 한 번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하신 적이 있습니다. 내가 당한 일에 동지들이 이렇게까지 크게 화낼 줄 몰랐다. 어떨 때는 나보다 더 크게 화를 내주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우리가 모르는 사이 이미 우리는 지혜복이 되어 있었구나. 지혜복으로서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구나. 모두가 본인의 일이라 느끼고 행동하고 있었구나. 이제서야 저는, 우리가 지혜복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제는 서울시교육청과 전교조 서울지부가 참석했던 정근식 없는 정근식 1년 업무평가가 있었습니다. 평가가 시작되기 전 동지들과 모여 선전전을 했습니다. 선전전이 끝나고 혜복 동지는 또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급하게 모였는데 동지들이 이렇게나 많이 모여주어서 너무나도 행복합니다.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동지, 어찌 이렇게 힘든 투쟁을 하고 계신데 어떻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날 아침엔 농성장에 계고장을 붙이려해서 직접 찢어버리셨고 행복하다고 말하고 계실 때는 동지를 그렇게 괴롭혀 온 서울지부가 앞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사실 혜복 동지께서 그 말을 하고 계실 때 저도 조금은 행복했습니다. 왜냐하면, 동지가 행복하다고 말하였고 언제든 달려와 모여주는 동지들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꽤 최근까지 이 투쟁이 막바지에 다다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온갖 곳에서 지겹도록 우리들을 괴롭혔고 우리가 갈 길은 아직도 멀었더라고요. 재판이 어떻게 끝나든 이 투쟁이 어떤 결말로 흘러가든 우리는 더 나은 학교, 더 좋은 세상을 위해 계속해서 함께 달려갑시다!
구호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오늘은 마음 편히 외칠 수 있을 거 같네요.
내가 지혜복이다! 부당해임 철회하라!
우리가 지혜복이다! 학교로 돌아가자!
모두 같이 학교로 돌아가기로 했으니까 끝까지 함께 해 주셔야 합니다. 투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