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노동자현장실천 · 2024-10-29
지혜복 선생님이 학교 내 성폭력 사안 해결, 부당 전보 철회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선 지 오늘로 283일째다. 연초에 시작된 투쟁이 연말을 향해 가고 있고, 투쟁의 정당성에 대한 지지와 연대가 인권운동, 여성운동, 학부모운동, 노동조합과 노동운동단체와 정당까지 노동시민사회로 확산되고 있다. 딥페이크 성범죄 가해자 중 청소년이 차지하는 비중이 75.8%라는 충격적인 보도로 A학교 성폭력 사안은 단지 한 학교에서만의 문제가 아닌 한국 사회 전체 학교의 문제임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에 A학교에서 피해자의 편에서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전보되고, 그것도 모자라 결국은 부당한 해임 징계로 학교 밖으로 내몰린 지혜복 선생님은 학교 내 성폭력, 청소년 성폭력 문제 대응에 취약하다 못해 참혹한 지경에 까지 이른 학교 현장의 성폭력 피해자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전교조 서울지부 조합원 선생님이 되었다.
지혜복 선생님에 대한 전보의 부당성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공익제보와 전보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다는 서울시교육청의 해괴한 논리는 77인 변호사의 법률적 판단으로 깨진 지 오래다. 또한, 중부교육지원청은 A학교 성폭력 사건 처리에 대한 지혜복 선생님의 행정조치 요구에 대한 답변으로 A학교를 ‘기관 경고’하였음을 알려왔다. 역사와 사회 교과는 각가 독립된 교과이므로 담당교사에 대한 인사는 ‘분리 인사’가 원칙임 역시 재확인되고, 현재 적용되어 시행되고 있다. 법률적 판단, 행정조치, 인사원칙에서 밝혀진 부당전보 근거 외에 또 무슨 부당전보의 근거가 더 필요한가? 하지만, 중부교육지원청과 서울시교육청에 의해 부당전보는 부정되고, 성폭력 피해로 고통받는 학생과 이를 대리한 선생님을 갈라놓고, 학생들에게 돌아가려는 선생님의 노력을 ‘해고’로 '직무유기', ‘고발’로 모욕하고, 교사로서의 명예를 훼손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먼저 조합원인 지혜복 선생님의 손을 잡아야하는 것은 누구인가? 그 많은 단체들이 지혜복 선생님 투쟁에 지지와 연대를 표하는 동한 전교조 서울지부는 지난 2월 3일 이후 지금까지 A학교 성폭력 사안 해결과 부당전보 철회, 해고 징계, 형사 고발에 대해 그 어떤 입장도 발표하지 않았다. 노동조합의 자주성과 민주성을 내세운 서울지부 중서부지회의 결정, 집행위의 의견 등 절차적 이유를 들어 지혜복 선생님 투쟁에 ‘거리두기’를 지속했고, 지난 8월 서울지부 집행위에서는 지혜복 선생님 투쟁을 지지해야 한다는 안건에 대해 심의를 보류한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노동조합의 자주성과 민주성은 조합원의 자발성에 근거하는 것이지 단순히 형식적인 절차에 근거하지 않으며, 게다가 노동조합의 상부 조직 또는 일부 간부의 ‘지도’에 순응하는 것이 아님은 민주조조운동 과정에서 수도 없이 밝혀졌다. 따라서 전교조 조합원인 지혜복 선생님의 투쟁에 대한 전교조 서울지부의 결합, 지지, 지원은 어떤 이유로도 거부되어서는 안 된다.
1986년 경쟁교육과 학생이지만 인간임을 부정당하는 현실, 그래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려고 죽음으로 항거한 학생, 교사도 노동자라는 교육노동자의 당당한 선언은 노동조합인 전교조를 탄생하게 했다. 당당한 교육노동자로 서서 굴종의 삶을 살지 않겠다던 그때의 다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그때는 권력의 명령, 관료적 지시에 복종해야 했던 것을 성찰했던 시절이었다면, 지금은 스스로 내면화된 자본주의 경쟁 이데올로기 속 실행자가 되어 체제 유지를 위한 온갖 모순과 부조리를 방관하거나, 스스로 회피하거나 아예 침묵해버리는 교육노동자의 모습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러한 성찰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A학교 성폭력 사안과 부당전보 철회 관련 어느 집회에서 ‘용화여고’사건을 이야기하며, 단 한 명의 함께하는 교사를 보지 못했다는 활동가의 절규가 빼아프게 들려왔다. 우리의 노동은 무엇을 위한 노동이었는가를 다시금 돌아보며, 지혜복 선생님의 투쟁을 계기로 우리는 학교 안의 경쟁적, 가부장적, 관료적 문화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학교를 들썩이게 만드는 것, 적어도 학교 안에서 은폐되고 억압되는 것을 드러내는 역할을 해왔던 전교조의 목소리를 되살려, 전교조가 학교 안팎으로 또다시 제 역할을 해야 할 때이다.
또한, 전교조 조합원들은 단지 조직의 방침에 따라서만 행동하지 않았다. 성과급 균등분배 투쟁을 제시한 집행부에 대해, 전액 반납 투쟁을 제안하고 시작한 것은 조합원이다. 일제고사 해고 압박에 현장 조합원들은 다시 해고를 각오한 투쟁으로 해고를 무효화시켰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박근혜 퇴진 청와대 선언 역시 조직에서 불허한 투쟁이었지만, 이는 박근혜 퇴진 투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교사이기 때문에 안된다는 ‘노동조합’을 건설하고자 1,500명의 해고를 감수한 바보 같은 조직, 박근혜 정권의 폭압적 노조탄압에 해고될 줄 알면서도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굳건히 지키며 ‘실익이 없다’는 그 투쟁에 ‘단 한 명의 조합원도 버릴 수 없다’며 조합원 70%가 정권의 규약시정명령을 거부한 바보같은 조직이 바로 전교조다. ‘안 된다’는 유혹과 회유, 협박에도, 그 끝이 해고인 줄 알면서도, 조합원 투쟁의 힘으로 이겨내며 전교조는 35년을 이어왔다. 그리고 이는 모두 전교조의 자랑스런 역사가 되었고, ‘안 된다’던 것을 ‘되는’ 것으로 만들어왔다.
우리는 다시 ‘안되는’ 일일 수도 있는, 하지만 넘어야만 할 큰 산을 마주하고 있다. A학교 문제와 관련된 투쟁은 성폭력 사안의 해결과 함께 이를 어떻게 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 실천을 고민하게 하는 숙제다. 우리는 학교에서 더 많은 목소리들이 나오게 하고, 학교의 문화를 바꿔나가야 하며, 현재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자본주의 체제, 가부장적 체제가 강요하는 구조적인 문제임을 선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소리를 내는 주체가 학교에서 배제되고, 내쫓기는 일이 더는 없도록 나서서 싸워야 한다. 학생이든, 교육노동자든 그 외 주체이든 노동자 권리를, 인간으로서 권리를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그것이 전교조가 해야 할 일이고 전교조가 나아갈 길이다. 다시 ‘안 되는 일’을 하자! 전교조의 자랑스런 역사를 함께 만들어가자! 그 길에 전교조 서울지부도 함께 하길 다시 한번 강력히 촉구한다.
2024. 10. 29.
교육노동자현장실천
